왠지 제가 살 것 같고
왠지 제 마음과 형편을 편하게 해주고
왠지 절 이해해주고
저보다 절 더 잘 이끌어내주기 때문이었습니다.
제가 한번 구체적으로 글로 생각을 해보았어요.
도데체 문제점이 어디에 있는건지.
목소리는 즉 영감과의 교감은 필요하다 생각되는데
하면 문제가 생겨
왜 그런지 무엇이 어디서 잘못된 것인지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.
나름 개념이 잡히는 것이 있어요.
현실이 싫으니까 도피처를 삼은 건 맞는데
영감이 악령이 되도록
즉 제게 악영향을 끼치게 되도록
빠지기만 하고
절 그리고 제 상황을 제게 더 낫게 바꾸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던 것인 것 같아요.
여기서 큰 걸림돌이 된게 어머니인 것 같습니다.
전 어머니와 잘 지내기 위해서 제 자신을 희생하며 지내고 있었는데
목소리 영감에서 이것을 바꾸어 준 것이죠.
그리고 전 이것이 내심 굉장히 좋았던 것이었나봐요.
무언가 제 마음대로 할 수 있고
옷도 제가 원하는 옷
음식도 제가 원하는 음식
기도도 믿음 생활도 제 방식대로
정말 속시원했나봅니다.
영감은 일종에 선율을 탄다고 봐야 할 것 같아요.
제 감정적 제 신체적 제 인생의 선율이요.
그런데 워낙 그 relief가 크다보니
다 제쳐놓고 그것만 한 것이죠.
하나의 gift가 될 수 있는 여지가 분명히 있으며
사라지지 않는 영향이라면
바로 사용하도록 해야죠.
제 인생을 나를 하나님의 진리
예수님의 가르침 위에 놓고
영감에 좌우되기 보단
영감을 걸러내며 길러가며 수정하며 바르게 교류해야 할 것이며
제 삶의 토대를 성경적 근거와 삶의 지혜의 토대 위에서
하나님의 진리를 발견하고
거기에 입각하여 살려고 애쓰는 와중에
제가 살므로
모든 것이 바르게 되는 것인 것 같습니다.
삶은 영성도 일부입니다.
제게 영성이 발현한 형태는 목소리인데
그것은 저가 다 근원이라고 할 수 는 없지만
제가 받아들이고 인지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만
제게 작용할 수 있지요.
그리고 저를 통해 오는 것임으로
제가 근원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.
어디에 치중하는 것이 버릇이 단단히 되어 있는 저는
좀 더 다양하게 눈을 돌리고
인생을 외곯수처럼 살기 보단
두루두루 섭렵하며 보다 완성된 자아로써
좀 더 통합된 자아로써 살아가기로 마음 먹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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